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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본 적 없는 어머니의 그늘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

<시놉시스>

홀로 남아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던 마사코에게 셋째아들 내외가 함께 도시에 와서 살기를 청한다. 이를 받아들여 도시로 올라온 마사코는 성실한 아들과 다정한 며느리,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운 한 때를 맞이한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마사코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치매증상을 심하게 앓는 상태가 반복되면서 마사코는 셋째아들의 가정을 불화의 늪으로 빠뜨린다. 서로를 탓하기 시작한 가족,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입는 가정의 모습은 이후 점차 악화되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찾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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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엔 우리가 일상적으로 좇는 꿈과 이상보다도 살가운 이웃이 더 큰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표현에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다. ‘재산’이라는 단어는 간혹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바, 사람을 이익의 도구로 대상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혹은 인맥을 출세의 방편으로 이용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람을 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인 관계망 속에서 탈각되지 않으려다 보니, 우린 정작 중요한 가족을 돌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살진 않는가.

<소중한 사람>이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에게 들려주는 전언은 그런 자기반성과 맞닿는다. 표면적인 줄거리만 놓고 보면,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궁구하는 영화이지만 사실상 그들은 여자 대 여자, 어머니 대 어머니 간의 이해 과정을 지켜보게 한다. 좀 더 큰 그림에서 보면, 두 여인의 교감 과정은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것은 물론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진정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더 나아가 점차 소외되어 가는 한 인간과 그를 대하는 방법을 찾는 한 인간의 분투를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의미’를 궁리하게 한다.

소중한 사람(Ori ume, 2001) / 제작국가: 일본 / 감독: 마츠이 히사코 / 출연: 하라다 미에코, 요시유키 가즈코 / 111분 / 국내 개봉일: 2011년 9월 21일 / 배급사: 영화사 조아 / 등급: 전체관람가 / 장르: 드라마

영화는 홀로 노년을 보내다가 셋째 아들 내외의 제안에 의해 도시로 이사 온 마사코(요시유키 가즈코 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시골에서 홀로 사는 동안 이웃과 온정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가 셋째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자식과 손주들을 멀리 두고 혼자 살면서 느낀 고적감때문으로 추측된다.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비춰볼 때, 그녀는 혼자 남겨진 삶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셋째 아들 내외가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며느리, 손주들과 살가운 가족을 이루며 여생을 보내는 꿈을 꾸기에 이른다. 셋째 아들 내외 역시 마사코가 필요했다. 며느리 도모에(하라다 미에코 분)는 할머니가 가사도 돕고, 손주들도 챙기면서 자신이 집에 없는 시간에 도움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가 화초 도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에 마사코가 집을 지키게 되면, 집안 풍경이 좀 더 나아지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서로에 대한 바람은, 자기 필요에 따라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마사코와 도모에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안기는 경과를 보면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이제 마사코에게 도모에는 더 큰 좌절감을 베푸는 며느리다. 셋째 아들은 직장일로 바쁘고, 손주들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급기야 도모에마저 아르바이트를 위해 집안을 비우면 마사코는 낯선 도시에서 더욱 쓸모없게 버려진다. 더군다나 사려깊었던 도모에가 자신을 귀찮아 한다는 사실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의 치매 증세가 점점 심각한 국면에 접어든다. 그것은 도모에에게 마사코가 번거로운 존재가 된 결정적 이유다. 이제 도모에에게 마사코는 가사를 돕기는커녕, 집안을 어지럽히고 이웃에게까지 폐를 끼치는 존재다. 그러다가 가족 모두가 마사코에 의해 정신적 피해를 입기 시작한다. 마사코를 보살피려 했던 도모에가 자기 결정을 후회할 때, 관객 대부분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 마사코의 존재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좋은 며느리’와 ‘좋은 시어머니’, ‘좋은 아들’과 같은 ‘배역’을 낳는 존재였다. 그러나 마사코가 병에 시달리면서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자, 허울 뿐이던 이 ‘역할놀이’는 기초부터 무너져내린다. 셋째 아들 가족 내외에 있어서 “나에게 제대로 된 ‘기능’을 해주지 못하는 ‘당신’은 내게 단지 짐으로 여겨지는 존재일 따름”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사람관계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인 가족과 가정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서로 간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결코 탄생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친다.

결국 도모에는 남편과 함께 치매 노인 보호기관 등을 둘러보며 마사코를 감당할 다른 곳을 찾는다. 바로 그때. 도모에와 관객에게 마사코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제공된다. 그것은 치매에 걸린 노인 마사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극적인 환경을 견디며 성장한 후 헌신적인 어머니로 한 평생을 살았던 마사코에 대한 이야기다. 마사코는 자기가 치매 노인 보호기관에 보내질 것을 받아들인 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도모에에게 밝힌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마사코는 도시로 일하러 떠난 어머니를 기다리며 할아버지 손에 성장한다. 마사코는 1년에 단 몇 번뿐인, 어머니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외로움을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의 재회일이 오고, 마사코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를 만나왔던 바닷가에 간다. 그러나 이번엔 어머니가 오지 않고 꼬마 마사코는 혼자 남겨진다.

우회적인 정보에 의하면,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마사코의 곁을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사코는 10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와 생이별하고 동경에 양녀로 팔려간다. 그곳에서 멍투성이가 되도록 맞아가며 성장하던 그녀는 오로지 그 집을 나서기 위해 서둘러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생활도 불운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모에의 남편, 그러니까 셋째 아들이 초등학생 때 마사코는 남편을 잃는다. 그 후 그녀는 오로지 바느질로 자식 넷을 키운다. 삯바느질에 몰두하는 어머니의 등만 보고 자랐다는 도모에 남편의 증언은 어머니로서 마사코의 생애를 짐작케 한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칭찬의 말로 기운을 북돋워주고…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저마다 상대방에 의해 상처를 받는 오늘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서로의 모습과 삶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정 불화의 중심에 놓여있던 마사코는 며느리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펼쳐냄으로써 ‘이해’의 물꼬를 튼다.

그런 마사코의 고백을 듣고 난 후, 도모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그리고 ‘어머니’로 마사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현실적인 첫 번째 변화로, 도모에는 치매 노인 보호기관에 마사코를 의탁하려던 마음을 돌려 다시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마사코는 뒤늦게 발견한 재능을 살려 그림을 그리며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 싸운다. 그 와중에 그녀는 고운 매화그림을 그리는데, 그 순간 무심코 지나갔던 대사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매화는 나무 변(木)에 어미 모(母)를 쓴단다. 그래서 매화(梅)는 엄마의 나무인거야. 강하고 고운 엄마의 나무….”

▲마사코를 이해하게 된 가족들은 미술치료(아트테라피)를 통해 마사코의 병이 극복될 수 있도록 힘을 합친다. 홀로 남아 노년을 살아가던 마사코, 도시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되던 마사코가 관계를 회복하고 ‘자연스러운 가족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련의 과정은 가정과 사회에서 서운한 감정 한 번쯤 느껴봤을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더불어 영화 그 자체가 우리에게 관계회복의 방법을 일러주는 영화치료(아트테라피)에 다름 아니다.

<소중한 사람>의 원제는 “오리우메(折り梅)”다. “꺾어진 매화는 다시 핀다”라는 뜻으로, 그것은 마사코의 생애를 요약적으로 전한다. 우리 각자의 어머니에게 응당 갖춰야 했을 최소한의 예의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면, 외로움에 꺾인 사람들의 오늘에 대해 미안해질지도 모른다. 내놓기 초라한 자기 모습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면, 나도 당신도 살아갈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린 서로에게 재산이 되는 관계가 아니라, 최선이 되는 관계여야 한다. 마사코와 도모에의 배경에 핀 매화가 당신과 우리 사이에 필 수 있기까지.

 

* 필자소개 : 안숭범 (시인, 영화평론가, 경희대학교 학술연구교수)

* 본 글은 필자의 동의를 구하였고, 글이 게재되고 있는
  경희대학교 미디어센터(프리미엄 칼럼)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 Siesta132

    제목에서부터 뭔가 느껴지네요